정원도

유니스트에서 피요르드 싱가폴 스튜디오까지

Interviewed by 김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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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인터렉션 디자이너 정원도(Wondo Jeong)는 2019년 유니스트 디자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이후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턴시인 피요르드(FJORD)의 싱가포르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김성범(SB) 안녕하세요. 원도형! 지난번 세미나에서 좋은 이야기 많이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많은 학생들이 형에 대해 궁금해해서 추가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흔쾌히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먼저 피요르드에 대해 짧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원도(WD) 아냐, 나도 반갑고, 매우 즐거운 일이지. 우선 피요르드는 잘 알려진 데로 액센추어(Accenture)의 일부로, 현재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디자인 컨설턴시이고, 우리가 주로 하는 업무는 서비스 디자인, 비즈니스 디자인, 인터렉션 디자인 이렇게 인간중심 디자인과 디지털 제품 디자인 쪽을 많이 하고 있어. 액센추어는 피요르드 말고도 디자인을 하는 다른 조직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리서치에 강점을 두고 있고, 전략적으로 더 상위 레벨에서 비즈니스를 바라보고 솔루션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 쉽게 비교하자면 하는 업무는 아이디오(IDEO)나 프로그(frog)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SB 울산에 있는 학교에서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디자인 컨설턴시로 해외 취업을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해요.

WD 사실 해외 취업을 위해 준비는 따로 하지 않았어. 내가 잘해서 안 했다기 보다는 유니스트에서 대부분의 작업을 영어로 하다 보니 추가로 더 해야 할 점이 없었고, 학기 중에 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했어. 다만 학교에서 했던 프로젝트 한두 가지 정도는 단순히 ‘했다’ 정도에 그치지 않고, ‘성취’까지 연결하고 싶었고. 사실 작업 자체의 질이 중요하지 어워드가 현업에 와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수업 결과물을 어워드라든지 논문으로 연결해서 ‘내가 이렇게 준비했고 이런 작업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혹은 사랑을 받았다’라는 스토리 라인을 이어가고 싶어서 그런 작업들을 했어. 아, 그리고 포트폴리오. 뭔가 스토리텔링을 하는 데 있어 일관성 있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는 점. 이렇게 크게 두 가지 정도 될 것 같아.

SB 현재 피요르드에서 일하시면서 재밌거나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WD 사실 입사 했을 때가 2020년 1월 중순, 팬데믹 바로 직전이어서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게 좀 많아. 피요르드 문화가 직원들이 함께 외부 활동도 자주 같이하고 그러는데 그런 것들을 많이 못한 게 아쉽고, 동료들도 팬데믹으로 문화가가 많이 바뀐 것 같다며 그 전의 피요르드가 그립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돌이켜봤을 때 좋았던 점은… 아 맞다. 옆에서 일하던 직장 동료가 일하다가 갑자기 닌텐도 스위치를 가지고 와서 게임을 하는 거야. 갑자기 그러길래 왜 일 안 하고 게임을 하냐고 물어보니, 인터렉션 관련된 것들이라며 저리 가라고 하더라고 (웃음) 이렇게 회사에서 동료들이랑 같이 스위치로 게임을 하기도 하고, 보드 게임도 하고 되게 분위기가 자유로운 게 좋아. 우리는 이런 걸 ‘오토메이션(Automation)’이라고 표현하는데, 여기는 본인이 자유롭게 일하고 그것에 대해 존중받는 것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받기를 바라는 거지.

회의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스위치로 게임하는 중 심지어 오른쪽은 시니어 매니저다. – 사진 제공: 정원도

SB 오토메이션이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보는데, 자유로운 만큼 책임도 져야겠지만 또 존중받는 그런 문화. 좋은 것 같네요.

WD 그치. 그거 말고도 매 프로젝트 할 때마다 모두에게 물어보는 것들이 있어. 싫어하는 사람 혹은 동료의 종류 같은 것들. 예를 들면 ‘나는 밤에 업무로 연락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런 것들을 다 공유하고 시작을 하니까 미리 이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다 보니 굳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존중할 수 있고. 그런 시간을 꼭 킥오프 미팅 때 가지는 게 좋더라고. 

SB 지금 유니스트 디자인학과에서 진행되고 있는 킥오프 미팅에도 적용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WD 그리고 킥오프 미팅 때 이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도 물어보기도 해. 나는 지금 서비스/인터렉션 디자인 직무를 하고 있지만, 서비스 디자인 쪽에 어느 파트를 더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그 파트를 잘하는 친구가 ‘어, 이때 나랑 같이하자.’라며 가르쳐주면서 같이 일하고.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가져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명확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또, 같이 프로젝트의 성공에 대해서 묘사를 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여기의 킥오프 미팅만으로도 소개해줄 수 있을 만큼 되게 중요하고 흥미로운 게 많아.

SB 매우 흥미롭고 좋은 문화라고 생각해요. 그럼 혹시 최근에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어떤 부분을 배우고 싶다고 의견을 말씀하셨나요?

WD 킥오프 미팅 때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지 잡는 과정에 소셜리스닝(social listening)이 있었는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방법론이어서 관련해 배워보고 싶다고 했어. 요즘 리뷰 읽는 게 중요해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있고 팬데믹 때문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소스도 제한적이어서 이런 접근이 중요해지고 있지. 우리는 대부분 정성적 리서치를 중심으로 하는 팀이다 보니 이렇게 데이터 중심으로 인사이트를 뽑아보는 정량적인 리서치를 같이 하기 드물어. 소셜리스닝은 정량적 정성적 둘 다 해당하는 방법론이어서 배워보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다수의 포스팅을 기반으로 인사이트, pain-point 등을 찾고 맵핑하는 과정 – 사진 제공: 정원도

SB 그러면 서비스/인터렉션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가장 큰 역량 혹은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WD 내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오르는데. 뭐 당연히 사용자에 대한 공감을 잘 해야 하는 것은 필수이지만, 특화되어야 하는 역량은 줌인/줌아웃(Zoom In & Out)할 수 있는 능력인 것 같아. 서비스 디자인은 전체를 바라봐야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하나의 터치 포인트를 바라봐야 하기도 하고. 인터렉션 디자이너로서 픽셀 단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터페이스의 버튼이라든지 UX 라이팅까지도 바라봐야 하니 이런 능력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 물론 나도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는 쉽지 않았어. 프로젝트를 처음 접하다 보니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멀리서 큰 그림을 바라보기도 쉽지 않았지. 근데 이것은 계속 경험하고 노하우가 쌓이면서, 아직은 서툴지만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 초기에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인터렉션 디자인에 조금 집중했었던 것 같고.

SB 피요르드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학교생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탈리아에서 일하시다가 어떤 계기로 유니스트 디자인학과로 대학원을 오시게 되셨나요?

WD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온 김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던 중 아는 지인으로부터 그때 당시에 내가 정말 좋아하던 교수님이 유니스트에 계신다는 소식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지. 또 예전에 회사 다닐 당시에는 개발도 하는 디자이너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엔지니어링 쪽도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 개발도 할 줄 알았었지. (웃음) 학교에 와서 직접 공부해보니 쉽지 않은 일이란 걸 깨닫는 경험도 됐지.

SB 그러면 유니스트 생활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에 가장 아끼는 것은 어떤 건가요?

WD 음…지금 생각해보자면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르는데, 그중에도 더 아끼는 프로젝트는 ‘머니 플래닛(Money Planet)’인 것 같애. 새 직장을 구하려고 면접에 들어가며 100%로 면접관들이 좋아해. 한 번은 왜 그런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접근이 신기하고 못 봤던 프로젝트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그 당시에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애. 그래서 진행하다가 어디서 봤던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다시 새로 하고.

머니 플래닛은 ‘대학생들이 스트레스 없이 돈 관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영수증으로 소비 패턴을 추적해서 재정 관리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안했던 프로젝트였어. 영수증이 실제로 있으니 돈을 추적할 수 있고, 사람들도 영수증을 보면서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매개체로서 뭔가 스토리텔링을 쉽게 할 수 있었지. 영수증을 보면 그 당시가 생각나니까. 좀 더 좋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어.

영수증 통해 현금흐름까지 쫓았던 새로운 방법론의 접근 – 사진 제공: 정원도

그리고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방법에서 추상적으로 쉽게 돈을 떠올릴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었어. 리서치를 하다 보니 대학생들이 대게 저축의 목표를 여행으로 잡는 것에서 통찰을 얻어서 돈의 시각화를 세계지도로 해보는 방향으로 접근을 했지. 내가 이만큼 모으면 이 도시가 색깔이 변해서 ‘여기는 지금 갈 수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추상적인 돈의 흐름을 직접적인 동기부여로 연결할 수 있게 한 거야.

비주얼 디자인의 경우에는 내가 그 당시에 좋아했던 넷플릭스에 블랙미러 중에 ‘레트로 게임’에 나온 팩맨에서 영감을 받아서 적용했었어. 지금은 레트로 관련된 디자인이 많은데 그 당시에는 많이 없었거든. 이렇게 세 가지 정도가 새로운 접근으로써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호응까지 좋았으니 가장 아끼는 프로젝트가 된 것 같아.

여행 x 레트로 팩맨 비주얼 디자인 – 사진 제공: 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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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학교 생활 중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WD 대부분의 생활을 친구들과 같이하다 보니 웃긴 얘기도 많고. 개인적인 에피소드로는 결혼을 학기 중에 했는데 몇몇 친구들이 주동해서 서프라이즈 파티를 너무 감동적으로 해줘서 기억에 남아. 그때 결혼식 이틀 전까지 905호 도장실에서 페인트칠하고 있었는데, 손에 페인트 다 묻은 채로 축하와 케이크를 받았지. 그때 다 바쁜데도 서울에 결혼식 다 와주고 다시 울산으로 내려가서 밤새고 그랬었지. 애들도 다 밤새고 이러다 결혼식 때는 또 멀쩡히 보여서 너무 웃겼어.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 갚으려고 지금도 노력하는 중이야. 지금도 종종 연락하면서 지내지. 동료들 한 명 한 명이 다 에피소드고 보물이야.

동기들의 서프라이즈 파티 모습 – 사진 제공: 정원도

SB 정말 듣기만 해도 물론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학교생활을 지내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디자인학과 재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WD 내가 있었을 때와는 조금 달라졌다고 들었고 석사 기준으로 말하는 게 맞는 것 같고. 그래서 취업 관련되어서 말을 해줄 수 있는 게 조금 있을 것 같아. 첫 번째는 시야를 넓히는 것. 전에 이탈리아에서 일했을 때 동료들이 대부분 피요르드 밀라노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기도 했지만, 그 전에 교수님과 대화하다가 교수님도 예전에 컨설팅 회사도 생각했었다고 얘기를 해줬었어. 이 얘기가 되게 큰 힌트가 되었는데, 사실 나는 이전에는 카카오와 네이버 같은 인터넷 회사, 아니면 전자제품 관련 회사만 생각하고 있었지. 근데 그 이야기를 듣던 순간 ‘내 친구 중 몇 명이 액센추어에 있는데?’라고 생각이 나면서 퍼즐이 맞춰져 나갔지.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기회가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두 번째는 네트워크가 진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 경쟁이 심해서 싱가포르에서도 내놓으라 하는 학교 나온 사람들도 좋은 회사 가는 게 힘들더라고. 결국에 회사에 들어가는 사람들 보면 첫 단추는 지인들에게 기회를 얻은 경우가 많아. 세미나에서도 이야기했는데 요즘은 LinkedIn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학교 지인들이나 졸업생들 다 보여주니까 눈 한 번 딱 감고 메세지 해서 능동적으로 기회를 잡으면 좋으면 좋을 것 같애. 물론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지. 

SB 오늘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WD 뭘, 혹시 궁금한 거 있거나 물어볼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