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석사학위를 받은 두 사람의 생생한 학교생활과 졸업 이야기
Interviewed by 이효리You can go back to the English version of this page here.
여기에서 이 페이지의 영어 버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2021년 더운 여름밤, 두 명의 따끈따끈한 석사 졸업생 성원과 효정을 줌(Zoom)으로 만났다. 이 둘은 차이점도 공통점도 많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기대했다. 성원은 학부과정에서부터 시작해 유니스트에서 총 7년을 보냈고 뉴 디자인 스튜디오 (New Design Studio, NDS)에서 서비스 디자인을 공부하며 석사과정을 마쳤다. 효정은 유니스트에서는 석사과정만 진행했고, 오브 나우 랩 (OF NOW Lab, OND)에서 UX/UI 디자인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이 두 연구실은 교류가 많았고, 둘 다 소외계층을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에 공유하는 부분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터뷰는 본래의 기대를 뛰어넘어 각자의 분야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도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인터뷰이 하나: 장성원
- 연구실 NewDesign Studio
- 석사 논문 주제 듣는 것, 그 이상을 위하여 – 시각장애인의 공공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 개선을 위한 사용자 경험 기록 매뉴얼 (Beyond Mere Listening: A User Experience Record Manual to Improve Accessibility of Public Mobile Applications for the Visually Impaired)
- 지금 하는 일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스타트업 COO(운영총괄)
인터뷰이 둘: 진효정
- 연구실 OF NOW Lab
- 석사 논문 주제 에코 – 젊은 환자의 당뇨 관리를 위한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 (ECHO: Digital Service Platform for Diabetes Management in Young Patients)
- 지금 하는 일 멋쟁이 사자처럼 주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이효리 (HR) 각자의 연구실에서의 2년은 어떤 시간이었나?
장성원 (SW) 뉴 디자인 스튜디오(New Design Studio, NDS)에서는 나만의 워라밸을 잘 챙길 수 있던 기억이 가장 크다. 그러면서도 내가 무엇을 잘 해내야 하는지 스스로 발굴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연구실 사람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오직 프로젝트만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했다. 지금은 뭐든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 생활을 하며, 연구실에서의 삶이 얼마나 순수했던지 떠올린다.
진효정 (HJ) 오브나우랩(OF NOW Lab, ONL) 사람들과 프로젝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던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시에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도 늘었다. 부족한 시간을 스스로 어떻게 저글링(관리) 하느냐에 따라 다음날, 그다음 날이 달라지며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었다.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시간을 잘 쓰고 있는지, 프로젝트는 잘 선택한 건지, 석사과정 내내 끝없이 고민했다. 짧게 말해, 랩실에서는 디자인과 프로젝트에 대해 동료들과 열띠게 토론하고, 혼자서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SW 연구실, 학교는 정말 안전한 공간이었구나를 더 깨닫고 있다. 학교에서는 교수님들의 조언이나 충고가 때때로 간섭처럼 느껴져 반항심이 일기도 했는데, 이제는 디자이너가 나 혼자 밖에 없는 집단에 있으니, 그때 큰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많이 의지했던 이승호, 김황 교수님과 같은 든든한 버팀목 없이 지금은 혼자서 결정을 내려야 하고 모든 것이 온전히 내 책임이다. 학교보다 심리적으로 더 압박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 교수님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던 시간이 행복했다.
HR 그 과정에서 교수님들께서 보여주셨던 의사결정이나 작은 행동들이 성원과 효정 안에 남아 때때로 써먹게 되지 않을까.
SW 맞다, 벌써 써먹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있다. 그럴 때면 예전에 고생하신 교수님들께 죄송한 마음도 든다.
HR 본인 랩실만의 독특한 차별점이 있다면?
SW 모든 랩실 중 가장 독보적으로, 교수님을 주축으로 학생들이 다 같이 랩실의 연구/생활 가이드를 만들고 그 문화가 자발적으로 퍼져나가는 곳이다. 가이드는 곧 정해진 규칙이기도 하기에 어떤 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협의를 통해 계속 수정해나간다. 가이드를 함께 만들고 움직이고 발전시키는 과정에 놀라기도 하고 재미도 느낄 수 있다.
HJ OF NOW Lab는 UX 분야의 라이브러리, 커뮤니티 센터 같은 곳이다. 우선 연구실에 관련 자료들이 많이 있고, 그걸 보며 연구실 사람들과 아무 때나 편하게 소통하고 토론한다. 관련 영상 자료를 큰 TV에 틀어놓고 식사하면서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우리 분야에 대해 재미있게, 일상적으로 접근하는 랩실이다. UX 분야를 계속 공유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있다.
HR 유니스트 디자인학과 학생들은 특히 디자인에 더 목말라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타대생으로서. 굉장히 열정적이고 일상에서도 계속해서 디자인적인 깨달음을 추구한다.
HJ 나도 타대 출신으로서 유니스트에 와서 배운 점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 친구들은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크다. 말 그대로 열정을 배웠다.
SW 유니스트 디자인학과에는 디자인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니스트 학생들은, 이공계 고등학교를 나와 1학년 자유 전공을 거쳐 디자인을 선택하고, 나아가 대학원까지 디자인학과로 선택하는 일이, 깊은 진심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자인을 하면 접하게 되는 미적, 시각적인 것에 대해 스스로 부족하다고들 생각해서, 하나같이 ‘우린 더 잘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특히 사용자를 아주 깊게 들여다보는 문화가 NDS와 OF NOW Lab 학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다. 그 사람의 삶에 공감하기 위해, 당황스러우리만치 치열하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HR 얼마 전 NDS에 타대에서 온 인턴 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그런 경험을 하고 간 것 같다. 처음에는 이런 깊이의 정성적(qualitative) 연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인턴 기간이 끝나가는 즈음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SW 지금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도 초반에 모두 앉혀놓고, ‘현재 이런 서비스가 부족해서 심층 인터뷰가 필요하다’라고 했더니 하나같이 거부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코로나인데 어떻게 하느냐, 우리는 매출을 내야 하는데 지금 그것을 왜 하고 있느냐’ 등… 설득해야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설득하는 맛이 생겼다. 이제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거꾸로 나오기도 한다.
HJ 그것이 디자이너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이 디자인 과정을 통과했을 때, 이 제품/서비스가 더 나은 결과를 낼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HR 두 분 말에 너무나 공감한다. 그렇다면 각자의 랩실을 다섯 글자로 표현해줄 수 있을까?
HJ OF NOW Lab은 “UX 찢었다”
SW NDS는 “자유&규칙”
HR 유니스트라는 학교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SW 유니스트가 속한 지리적 특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서울에서 일하다 보니 ‘울산’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것이 행운이었음을 느낀다. 도농복합지역에만 해당하는 지역적 특색과 문화, 그리고 그 지역민이 갖는 특징들은, 유니스트에서 공부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NDS 랩실에 있을 때 교통약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때 울산과 울산시민에게서 얻었던 통찰이 많은 부분 서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울산에서는 촉박한 버스 스케줄로 인해 기사님들이 정류장을 그냥 뛰어넘거나 과속하는 등 문제가 있었는데, 서울에 오니 모든 버스가 정해진 스케줄대로 차분히 운행되고, 사람들이 버스가 멈춰야 일제히 일어나는 식이다. 이런 차이를 보며 우리는 지역마다 각자 고민해야 하는 환경과 문제의 차이가 정말 크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오히려 울산, 유니스트에서 경험하고 서울에 올라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상황을 두루두루 살필 수 있으니까.
HJ 나는 유니스트 하면, 교수님들에 대한 생각이 가장 먼저 난다. 이전까지 나름 열심히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더 잘 해내기 위해 여러 정보와 자료들을 찾아다니느라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유니스트에 오니, 이 커뮤니티 안에서 내려받는 정보/자료들을 받아 소화하기에도 벅찼다. 각자의 분야에서 현직인 데다 연구도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이 포진해있고, 그분들의 네트워킹을 통해 거의 매 학기, 매주 유명 연사들의 세미나가 열렸다. 연사분들의 라인업을 보면, 바깥에서는 몇 달에 한 번 들을 수 있을까 말까 한 대단한 분들이다. 그런 세미나를 포함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교수님들이 계시는, 너무나도 좋은 환경에서 배웠다. 아직 미숙한 내가 아무 때나 찾아가도 성심성의껏 피드백을 주시는 등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교수님들께 둘러싸여서 영광이었다. 말하자면, 나에게는 디자인 보물창고였다.
SW 사실 유니스트 기존 학생들은 너무 익숙해서 이런 인적/물적 인프라에 대한 감사함을 종종 망각한다. 지금 일하는 회사는 위치도 좋지 않고, 에어컨도 잘 돌아가지 않는다. 이승호 교수님이 학생들을 위해 값비싼 책상/의자를 들여주시고, 김황 교수님이 매우 비싼 카메라 장비를 구비해 주시곤 했던 상황과 차이가 크다. 그 외에도 학교 전체적인 인프라도 매우 뛰어난 편이다. ‘그런 것들을 잘 활용할걸’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HR 새로운 분야, 젊은 교수님들을 영입하는 자체가, 인적 쇄신을 통해 학교를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학교/학과의 의지인 것 같다.
SW 맞다. 전통이 쌓이기에는 아직 너무 젊어서 그런지,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데에 열려있는 것 같다. 가끔 하향식의 인위적인 전통이 생기려 할 때도 있지만, 학생들의 불편이 접수되면 교수님들끼리 긴급하게 모여 수정/개선해 주시고 또 그것이 바로바로 적용된다. 이런 빠른 과정에 놀라기도 했다.
HR 자, 그러면 유니스트를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SW “새로운전통”
HJ “울산와칸다! 밖에서는 모르지, 들어와봐, 여기가 23세기”
HR 이제 각자의 졸업과제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HJ 젊은 당뇨 환자를 위한 모바일 앱 서비스였다. 수업에서 시작했던 건데, 수업이 끝나고서도 스스로 더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결국 석사 졸업 주제가 되었다.
SW 시각장애인이 공공에서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정보 접근성을 높일 방안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HR 그 주제를 선택한 계기가 무엇이었나?
HJ 학사 시절 당뇨 환자를 위한 UX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IOT 기술을 기반으로 당뇨 혈당측정기와 모바일 서비스를 연동하여 서비스의 솔루션을 제시함으로서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다. 당시 나는 프로젝트를 회고하며 단순 기술을 활용하여 혈당 기록을 도와주는 것을 넘어 당뇨 환자의 일상생활의 관리를 도울 서비스가 그들의 당뇨 관리를 위해 더욱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석사에 올라와 새로운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를 조금 더 깊이 있는 사용자 경험 연구를 통해 접근 해보고자 했다. 그런 면에서 젊은 당뇨 환자는 꽤 집중할만한 타깃이었다. 최근 5년간 2, 30대 젊은 당뇨 환자의 증감률이 30%에 다 할 정도로 매우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바일에 익숙한 그들에게 조금 더 적극적인 인터랙션과 기능들을 제공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기대도 있었다.
HR 나는 처음에 ‘젊은’ 당뇨 환자라고 들었을 때, 그런 전략적 접근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반적 인식에 당뇨환자는 중장년층이니까. 그래서 ‘젊은’ 당뇨 환자는 오히려 외면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기에 주제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다.
HJ 맞다. 그들을 리서치하며 ‘젊은’ 당뇨 환자이기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젊은 당뇨 환자에 대한 여러 사회적 시선과 문제들로 인해 환자의 ‘자존감 상실’이 매우 컸다. 그리고 지속해서 요구되는 당뇨 관리 그 자체에 대한 ‘피로감’과 ‘우울’과 같은 정신 질환이 크게 대두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문제 정의가 분명해지며 이후 UX 관점에서 진행된 리서치 기반 솔루션에 날이 설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모바일 인터랙션적인 요소와, 데이터 기반 기능 제시로 가설을 세우고 유저 테스트를 통해 검증할 수 있었다.
SW 나의 주제는 NDS에서 2년 전 시행한 교통약자 모빌리티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그때 워크숍을 위해 다양한 유형의 교통약자를 초대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후천적 시각장애를 가지신 분을 전담해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분을 바로 옆에서 도와드리는 과정에서, 부르미 콜(울산의 장애인 전용 택시 서비스)과 스마트폰의 보이스오버 기능 등의 한계를 처음 보고 인사이트를 얻었다. 민간도 아닌 정부 제공 서비스라면 당연히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본 것이다. 서비스 디자인의 관점에서 그게 왜 안 지켜지는지, 전체 시스템에서 어떤 지점, 누구에 집중해야 하고 어떤 연결을 만들어야 하는지 넓게 보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서비스를 응대하는 고객센터 직원에게 정보 접근성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매뉴얼이 현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나와 매뉴얼 제작을 하였다.
HR 졸업 과정은 어땠나? 유니스트 디자인학과의 졸업 과정은 깐깐하기로 유명한데.
HJ 쉽지 않았지만 동시에 즐거웠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졸업 주제를 심도 있게 고민해서 선택한다. 교수님이나 주변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고민과 목표를 바탕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어려웠지만 즐겁고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었다.
SW 유니스트 디자인학과는 졸업 과정에서도 우리만의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유니스트 내에 다른 학과는 우리의 그린라이트 같은 제도(논문 최종 디펜스 전에 논문 과정과 방향을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제도)를 모른다. 그리고 지난 졸업자들부터는 석/박사 논문 디펜스 과정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퍼블릭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독보적인 문화는 교수님과 학생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만들어진 것이다. 각 단계를 거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모든 과정을 겪고 나니 ‘이걸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그린라이트 제도가 없었다면 디펜스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디펜스를 퍼블릭으로 하지 않았다면 2년간 공들인 노력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과 시스템은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를 존중하여 만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 변화가 끝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HJ 정말 공감한다. 까다롭지만 우리를 평가하려고 그런 과정을 만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시너지 효과와 결과를 내기 위해서 만든 단계임을, 하나하나 밟다 보면 느낀다. 나는 특히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이희승 교수님의 졸업 특론 수업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또 졸업 관련 수업을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었지만, 그 수업에서 좋은 피드백을 꾸준히 받아서 졸업 과정이 더 수월해질 수 있었다. 유니스트 디자인학과의 졸업 과정은 우리의 진정한 성장을 위한 장치들이다. 최고다.
SW 3-4년 전의 졸업 과정은 조금 달랐다고 한다. 내 선배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HR 그렇다면 졸업 과정을 통해 개인적으로 무엇을 가장 크게 얻었나?
SW 한 가지가 딱 떠오른다. 자립심이다. 이전까지의 프로젝트는 교수님이 리드하면 학생들이 그 뒤를 따라가며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었다. 졸업 과정에서는, 교수님은 서너 발자국 뒤에 서 계시고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바로 나다. 묵묵히 바라보시다가 내가 정말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것 같으면 그때 잡아주시곤 했다. 그러다 보니 중간중간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이나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다. 가끔은 그런 게 너무 힘들어 교수님을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프로젝트 중반쯤 넘어가며 이 자체가 아주 큰 배움이고 큰 자신감을 심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HJ 나는 디자이너로서 프로젝트를 대하는 자세를 가장 크게 배웠다. 내 주제는 수업에서 이미 한번 마무리되었기에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욕심이 생겨서 계속 디벨롭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디자이너에게는 ‘여기까지’라는 게 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더 하면 할수록 발전되고, 어떤 지점에서 가설을 설정하면 또 변화해서 사용자에게 다르게 다가간다. ‘끝인 줄 알았는데, 이게 이렇게도 되네’ 하는 재미를 많이 느꼈다. 그렇게까지 스스로 무언가를 끝없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인생에서 또 가질 수 있을까 싶다.
SW 효정의 마지막 말에 공감한다. 사용자 한 명 한 명의 피드백을 모두 듣고 싶은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상업적인 서비스를 운영하면 수백수천수만 명을 들여다봐야 하니까. 유니스트 석사 때처럼 사용자들을 모두 만나보고 길게 물어뜯고 늘어졌던 경험을 이제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때의 기억이 더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진다.
반면, 사용자를 한 명 한 명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솔직하게는 내 인생에서 그렇게까지 큰 좌절감을 맛봤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우연한 기회로 시각장애인의 삶을 바라보게 되었지만, ‘내가 상대를 진짜 아는 게 맞을까?’ 하는 회의감도 들고,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계속 틀리고… 무척 아프고 속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을 스스로 해냈다. 그래서 내 졸업 과정은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HR 솔직한 이야기 고맙다. 따끈따끈한 졸업생 선배로서 나와 같은 후배와 남은 학생들이나 유니스트 디자인학과 지망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SW 유니스트 학부 출신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유니스트 디자인학과의 학사든 석사든, 전체적으로 약간 위축되어 있다. 정말 잘하는데도 ‘나는 부족해, 나는 더 잘해야 해’라는 압박감이 크다. 그게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을 갉아먹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나와서 일을 해보니 나도 충분히 가치 있고 잘하는 사람이더라. 전혀 쫄 필요가 없다. ‘내가 꽤 잘했었구나, 나 지금 잘하고 있네, 공부한 것 다 써먹네’ 이런 생각을 사회에 나오면 할 것이다. 자신감을 가져라!
HR 나도 느꼈다. 타대생 출신으로 보면, 여기 학생들은 유독 자신을 몰아붙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종종 자신에게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HJ 공감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데 자신에게 자비롭지 못하다. 유니스트 학생들 진짜 너무너무 잘한다는 말을 성원에게도 석사과정 내내 했다. 본인들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 했으면 좋겠다.
SW 학부 출신으로서 말하자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을 기회가 적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서울도 아닌 울산, 그것도 유니스트에서 가장 마이너 한 학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자기 능력이 얼만큼인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다. 학부 중간에 기업에서 인턴을 하거나 휴학하고 디자이너로 일했던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본인과 유니스트 학생들 수준이 높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경험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면 조금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HR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라운지랩의 하연님이 최근 학교에 방문해 세미나를 하셨다. 그때, 성원과 효정도 저렇게 곧 오겠구나, 생각하며 흐뭇했다.
SW 사실 내가 지금 열심히 일하는 동기 중 하나다. 지금 하는 창업을 열심히 해내서 부끄러운 출신이 되고 싶지 않다. 잘 해내서, 다른 선배들처럼 저렇게 귀감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크다.
HJ 그러고 보니 하연님도 타대생 출신이다.
HR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HJ 앞으로 UX 디자인을 계속할 것이다. 배울수록, 할수록 너무나 재밌다. 유니스트 안에서도 배울 것이 넘쳐난다고는 했지만, 실제 밖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끊임없이 살펴보길 권한다. 그러면 UX 분야의 새로운 통찰도 얻고 계속 연구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길 것이다. 최근 봤던 어떤 자료에서는, 처음에 UX 디자이너가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길에서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다니길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다. UX 디자이너는 이런 부분에도 책임감을 갖고 고민해야 한다.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UX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SW 더욱 넓게 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공부할 것이다. 디자이너만 있던 세계에서 벗어나 디자이너와 개발자, 기획자들이 모여 일을 하는 곳에 있으니 이 모두의 상황과 문제를 고려한 서비스 로직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의미가 있고 또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사용자만 들여다봤는데, 그렇게만 하면 결국 돌고 돌아 사용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뒤에 관련된 마케터, 개발자, 대표 등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지 않으면 프로젝트 전체가 산으로 갈 수 있다.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이 왜 저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지,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공부할 것이다. 그것을 잘 이해하는 때가 오면 이상적인 세계관을 가진 콘텐츠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HJ 성원이 말한 부분이 매우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최근 들어 UX와 서비스 디자인의 차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서비스 디자인은 서비스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그 배경에서 각각의 점과 플레이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하고 전체 흐름과 균형을 잡고 규칙을 세우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UX 디자인은 사용자 측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해당 제품/서비스를 우리의 목표와 가설에 맞춰 사용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분야이다. Lean UX라고 하는 것처럼, 빠르게 가설을 만들고 테스트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지금 대화를 통해 차이가 더 명확하게 이해되는 것 같다.
HR 개발로 치면 백엔드, 프론트엔드 같다.
HJ 맞다, 딱 그렇게 비유하더라.
SW 이렇게 사용자와의 터치 포인트를 들여다보는 UX 디자이너와 그 뒤까지 바라보는 서비스 디자이너가 모두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특히 작은 기업일수록 더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을 따라서 제품/서비스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그것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은 UX, 서비스 디자이너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획의 방향성을 잘 잡아나가려면 마인드셋이 잡힌 디자이너들이 필요하다.
오늘 겪은 상황에서도 이런 것을 절감했다. 우리 회사의 서비스 중 하나가 방문 교육과 관련한 것인데, 굉장히 린하게 빨리빨리 진행되다 보니 놓치는 게 많다. 물론 이런 질문들은 쉽게 나온다: ‘코로나 시국에 선생님이 방문했을 때 어떻게 부모님에게 안심을 줄 수 있을까? 마스크를 지급하면 될까? 방문 선생님께는 어떻게 마스크를 갖다 주지? 관련된 가격은 어떻게 정해야 하나?’ 등 온갖 고민이 나오지만, 정작 ‘그렇다면 고객은 어떻게 느끼는데? 지금 선생님은 어떻게 하고 있는데?’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다. 짧은 인터뷰만 몇 번 하면 바로 알 수 있는 것들인데도 마인드셋이 없으면 생각보다 쉽게 떠올리지도 못하고 실행하기도 어렵더라. 이런 경험을 해보니 우리가 공부하는 분야가 옳다는 것을 더 느낀다.
HJ 이 분야에 몸담은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재미가 넘친다.
SW 분야의 위상이 올라가서,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더 느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함께하는 동료는, 나를 수술 집도하는 의사처럼 여기겠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자신이 만든 로직이 엉망이므로 서비스 기획자/디자이너로서 이것을 헤집어서 고쳐달라고 하더라.
HR 앞으로 주기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가지면 좋을 것 같다.
HJ 유니스트 디자인학과 출신들은 모두 사회에 나와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잘 조성되기만 한다면 이런 대화가 현직 디자이너로서도 참 유익하다.
HR 헤어진 지 몇 주 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고 서로 배울 게 많다. 오늘 자리 정말 감사하다.
SW+HJ 우리도 즐거웠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