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굳마켓

전시 일자 2020년 10월 22일
전시 장소 서울 문래예술공장/ Hwang Kim 유튜브 채널

전시 일자 2021년 11월 16일 ~ 2022년 2월 27일
전시 장소 Centre for Heritage, Arts and Textile, Hong Kong
Directed by 김황 교수
Interviewed by 계원예술대학교 서동진 교수

김황 조교수는 2020년 10월 9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옵/신 페스티벌에 신작 ‘굳굳마켓’을 전시했다. ‘굳굳마켓’의 전시 의도와 그의 예술적 고민은 아래의 인터뷰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인터뷰는 옵/신 페스티벌의 공식 발행 자료에 실렸으며, 계원예술대학교 서동진 교수가 인터뷰 진행을 맡았다. 인터뷰 전문은 두 교수의 동의 하에 게재됨을 미리 알린다.

서동진 교수(DJ) 안녕하세요. 저는 계원예술대학 융합예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서동진이라고 합니다. 다가오는 옵/신 페스티벌에서 ‘굳굳마켓’이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는 김황 작가님을 초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우선 김황 작가님께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황 조교수(HK) 저는 디자이너이자 다원 예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황입니다. 이번에 옵/신 페스티벌에서 「굳굳마켓」이라는 신작을 6년만에 발표하려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DJ 먼저 굳굳마켓 작업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HK 굳굳마켓은 가치와 자본 사이 간극에서 일어나는 딜레마를 주제로 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는 라이브 방송, ‘라방’의 형태를 띤 작업입니다.

DJ 라방은 다소 생소한 단어인데요. 이와 관련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Good Good Market – Euijin Cho, Bongkeun Sung, Seungrok Kim, Photographed by Min Lee © Hwang Kim & OND Lab – UNIST

HK 미디어 커머스라고 하는 새로운 커머스 장르입니다. 쇼 호스트들이 유튜브 또는 다른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특정 제품을 판매하는 형태입니다. TV 홈쇼핑이 인터넷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한층 발전된 콘텐츠 커머스입니다.

최근 크리에이터들의 뒷광고 문제가 불거졌는데요, 뒷광고든 앞광고든 결국 크리에이터가 직접 창작한 비디오 내러티브를 통해 상품을 판매하고 플랫폼은 크리에이터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죠. 플랫폼, 대중이 직접 창작하는 비디오 콘텐츠,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닌 충동에 의한 소비 이렇게 3박자가 한데 모여 작동하는 첨단 소비주의의 장입니다. 중국은 소위 왕홍경제를 탄생시켜 이 장르를 가장 먼저 활성화시켰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인 분절적 구조를 온전히 커머스 도메인 안에서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DJ 굳굳마켓에서 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상품의 변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가진 생리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거나 어떤 필요를 해소하기 위해서 상품을 구매 한다기 보다는 그 자체의 윤리적 가치나 어떤 심리적 가치를 소비하는 일이 또 하나의 소비의 측면이 되어 버렸는데요.

특히 사회적 가치를 내세우는 상품들이 큰 관심을 끄는 등의 변화에 주목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소비문화의 중요한 면모이기도 하고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측면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런 질문을 마음에 품게 된 동기가 있는지요?

HK 저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사실 지금도 디자이너라고 스스로 칭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학문의 발현 자체가 산업 혁명-모더니즘과 함께 시작되었어요. 디자인은 열심히 근대 이전의 디자인‘적’(예를 들어 공예 같은) 행위들과 선을 그었지요. 그렇다 보니 디자인과 모더니즘은 사실 한 몸,분리 불가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런데 그 발현을 보면(물론 모더니즘도 그랬지만), 디자인은 단순히 조형 언어를 정립한 학문이나 산업의 방법론이 아니라, 급진적인 시대정신이었습니다. 디자이너 들은 실제로 당시 급변하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했고, 스스로 사명을 가지고 그런 역할을 짊어졌다 생각했죠. 하지만 100년이 지나고(2019년이 바우하우스 100주년이었죠.) 지금의 디자인을 보면 그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국제 양식(international style)’이라고 불리는 껍데기만 남은 디자인을 우리는 마주 하고 있습니다.

폴 그린할은 『디자인에서의 모더니즘』(Modernism in Design, 1990년)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국제 양식이 저지르고 있는 의심의 여지없는 범죄들은 양식이 그것을 발명한 동기로부터 얼마나 쉽게 분리되고, 악랄한 목적과 결탁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일부 디자이너들은 일찍이 이와 같은 딜레마를 감지했고, 촉발된 논의를 통해 정반합적으로 현 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비판적 의식을 가져 왔습니다. 양식과 디자인에서 시작된 비판 의식은 결국 물질성의 비판을 관통해 현대 문제의 원천인 소비주의나 자본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동시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한 저항은 동시다발적 으로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의 저항은 결국 학문의 발현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자기 부정적 성격이 강하죠.

저는 굳굳마켓을 통해서 약간의 풍자와 계획된 오브제, 크라우드 펀딩, 오브제를 판매하는 라이브 방송을 수행함으로써, 그러니까 소비주의의 구조를 차용해 냉소를 던지는 작업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Good Good Market – BR Socks © Hwang Kim & OND Lab – UNIST

DJ 김황 작가님의 작업은 비평적 디자인이라고 불립니다. 급진적 디자인 혹은 사회적 디자인 등을 하는 디자이너들을 보면, 디자이너가 가진 생득적인 원죄 의식 같은 것이 엿보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해 봤자 소비 자본주의의 신하라는 일종의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비평적 디자인 역시 김황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소비 자본주의의 신하라고 하는 정체성에 대한 자기 반발 혹은 이의 제기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비평적 디자인으로서의 퍼포먼스 혹은 다원 예술 활동은 상품 디자이너라고 하는 작가님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 부정적인 몸짓인가요, 디자이너로서의 실천을 확장하는 것인가요?

HK 제 생각에는 둘 다인 것 같습니다. 디자인의 원초적 수행성은 가치 생산에서 탈동조화하기 어렵습니다. 디자인 행위는 최소한 자본주의적 가치나 사용가치를 생산해 내야 합니다. 여전히 현대 디자인 이론에 핵심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ction)’라는 명제는 유효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지속적인 가치 생산에 저항한다면 이는 곧바로 디자인 행위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됩니다. 일상에서 행하는 매일의 실용 디자인 행위는 모순과 고통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죠. 스스로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발생하는데 그 모순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행위가 결국 다시 디자인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모순이 증폭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쓰레기 문제를 해결 하려는 디자인 과정에서 더 많은 쓰레기가 생산될 수도 있습니다.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오히려 역행하는지 진보하는지 알 수 없는 총체적 역설에 빠지게 되는 거죠. 하지만 멈출 수 도 없는 상황에 봉착한 것 같아요. 그런 순환 속에서 탈출과 재탈출을 거듭하는, 즉 의지를 다지고, 불가능을 인지하고, 체념 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작업하고 또 생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Good Good Market – Branding – Sticker © Hwang Kim & OND Lab – UNIST

DJ 최근 부상하는 중요한 디자인 실천 방법론 중에는 사용자 혹은 소비자의 경험에 기반한 디자인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오늘날 디자인이 대부분 어느 정도는 수행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용자가 가진 심리적 욕구나 생리적 만족이 아니라, 사용자의 생활 방식에 근거한 리서치 기반의 디자인, UX 디자인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죠.

조금 짓궂은 질문을 던져 보자면, 작가님의 작업을 두고 최근 유행하는 퍼포머티브한 디자인 요소를 가져다가 다원 예술이라고 갓을 씌운 것 아닌가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업적 디자인 실천의 퍼포머티브한 성격과 다원 예술 작가로서의 퍼포머티브한 실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HK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인터넷-PC–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디지털 서비스의 가치가 제품 자체의 가치보다 높아지고 있고, 사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이 크게 대두됐습니다. 제품 그 자체의 디자인보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제품을 이야기하는 브랜딩과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지고… 정말 디자인의 콘텐츠화, 퍼포먼스화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상업 디자인의 퍼포먼스화와 제가 하는 대안적 수행으로서의 디자인과 안무, 퍼포먼스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일단 상업 디자인 퍼포먼스는 자본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고, 그 내면에 인간에 대한 환멸이 스며 있어요.

앨런 울먼은 『코드와 살아가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사실 여러분의 친구가 아니다…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의 기저에는 인간을 지독하게 경멸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상업적인 경험 디자인은 사용 경험을 쾌적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경험을 천편일률적으로 통합시킵니다. 여기에는 공감 방법론(Empathy Methods)을 이용해 사용자의 섬세한 경험들마저 모두 통제하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무서운 점은, 그게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아마존 쇼핑 UX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 같아요. 온라인, 모바일 쇼핑 경험이 매우 쾌적해졌죠. 과거와 비교했을 때 정말 말도 안 되게 깔끔해졌습니다. 제품을 선택하고 결재하는 데 1분도 안 걸리죠. 이 온라인,모바일 쇼핑 경험을 “아마존 쇼핑 경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압도적인 경험은 무한 A/B 테스트로 정립이 가능해졌는데요. 계속해서 무한대로 반복되는 테스트를 통해서 가장 완벽한 온라인/모바일 쇼핑 경험을 만들어 냈습니다. 후발 주자들은 더 늦게 테스트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마존보다 더 좋은 알고리듬을 만들어 낼 수 없었어요.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 동일한 프로토콜을 사용합니다.

문화와 인종을 넘어서 동일한 경험 디자인이 전 인류 차원에서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 낸 거죠. 애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더니즘의 상징처럼 빛나는 미니멀한 아이폰 디자인을 진행할 때 0.1밀리 차이나는 시제품을 만 개도 넘게 만들어서 비교하며 인간이라는 동물의 손에 가장 완벽한 R값을 찾아냅니다. 거기에서 다양성은 논의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법칙이죠. 이러한 현상속에서 디자인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 근대 ‘양식’으로 회귀합니다.

반대로, 제가 하고 있는 대안적 퍼포먼스로서의 디자인은 기존 디자인 개념에서 탈출하는 탈물성 디자인에 기초를 두고 있어요. 사실 디자인에서 물성(physicality)은 벗어나기 힘든 기초적인 요소인데,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그 지점에서 퍼포먼스를 활용했습니다.

실례로 바우하우스에도 무용 수업이 있었죠. 제가 앞으로 한동안 작업하고 싶은 논문의 주제가 디자인과 퍼포먼스 사이의 오래된 인연을 들여다보고 다층적인 함의를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Good Good Market – Seungrok Kim with Healthy Anger Cushion, Photographed by Min Lee © Hwang Kim & OND Lab – UNIST

DJ 다시 작업으로 돌아가서, 라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쇼 호스트와 판매자들의 엄청난 판매 활동도 모두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까 그것을 냉소적으로 모방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의 퍼포먼스를 작업으로 가지고 올 때 작가님의 태도가 궁금합니다. 그들의 퍼포먼스를 그대로 모방했을 때 발생하는 불일치를 통해 소외 효과를 만들어 내고 싶은 것인지,아니면 그것 자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새로운 형태, 대안적인 형태의 퍼포먼스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 것인지요?

HK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한 예술은 지속적인 재전용을 통해 다시 가치를 박탈당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디자인이 껍데기인 양식만 남았듯이, 소비주의와 자본은 가치를 그냥 두지 않지요. 예술과 현실은 공회전을 통해 탈출과 속박을 계속하고요. 저는 굳굳마켓을 통해 그 부분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관객에게 실제로 방송을 하며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라이브 판매 방송을 차용한 퍼포먼스가 되는 동시에, 퍼포먼스를 차용한 라이브 판매 방송이 되는 지점. 양쪽 모두에 이러한 모호성이 작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탈출과 재탈출, 전용과 재전용, 그 간극과 간극 사이에 서 있는 것.

DJ 네, 일상적 실천에서 행해지고 있는 퍼포먼스와 비판적 예술 실천에서의 퍼포먼스 사이에서 전용이 가능하려면 그 둘이 다르다는 감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비판적 모방이 아니라 답습이 되어 버리기 쉬우니까요. 다음으로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서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소비자인 동시에 투자자가 되는 이 정체성의 변화가 오늘날 우리의 소비문화에서 중요한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형식은 어떻게 차용하게 되셨나요?

HK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는 선기능도 존재하지만, 위험한 측면도 있습니다. 펀딩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많은 굿즈들이 가치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가치를 파는’ 이 굿즈들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소비자가 굿즈를 구매함으로써 해당 문제에 기여한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 착각은 결국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와해시키고 해결을 유예합니다. “난 이 소비를 통해 좋은 일을 했어”라는 자위에 그치게 되는 것이죠. 소비는 기본적으로 쾌락을 주는 일이지만, 현대인들은 소비를 할 때마다 소비가 미치는 환경/사회적 악영향을 인지합니다. 즉, 소비를 하면서 쾌락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죠.

그런데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굿즈를 소비할 때에는 굿즈에 덧 씌워진 가치들이 그 죄책감을 제거해 줍니다. 수익금 일부를 기부한다는 등의 ‘장치’를 통해 소비자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위로 죄책감을 덮을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 공정 무역 등의 키워드는 내가 올바른 소비를 하고 있다고 말해 줍니다. 굳굳마켓은 고의적으로 이렇게 가치를 덧씌운 굿즈(오브제)를 제작하여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또 라방을 통해 이를 판매하는 것입니다.

Good Good Market – Climate ±1 Waterbook Illustration – Lacto Vegetarian © Hwang Kim & OND Lab – UNIST

DJ 저는 오늘날 상품이 탈물질화되는 경향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나이키는 처음 등장했을 때 운동화를 파는 대신‘저스트 두 잇’이라고 하는 정신을 소비하게 했고, 스타벅스는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공정 무역이라는 윤리적인 가치를 마시게 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디자인이 너무 물질에 갇혀 있어서, 탈물질화되어 있는 어떤 가치, 관념, 미학적인 이상을 가지고 움직여 볼 수 있는 다원 예술과 퍼포먼스에 이끌리게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반대가 아닌가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오히려 상품이 점점 탈물질화되어서 우리는 커피라고 하는 물질적인 개체를 소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윤리적 가치를 소비하는 것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물질성과 비물질성, 물질화와 탈물질화가 퍼포먼스를 둘러싼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데, 그 가운데 작가님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HK 방금 말씀하신 그런 예시들이 분명히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제가 봤을 때는 결국 아직까지도 그 정점에는‘제품’이 있습니다.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이라는 비물질적 이미지가 존재하지만 나이키에게 진짜 돈을 벌어 주는 건 그 신발이거든요. 물론 브랜딩이나 퍼포먼스, 스토리텔링으로 인해서 엄청나게 큰 비물질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지만, 신발이라는 재화가 없어져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 끝 점에는 여전히 손으로 만져지는 존재가 있고, 그 물질적인 제품이 그 위의 모래 피라미드를 버텨 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상품이 탈물질화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오히려 압력을 통해 다이아몬드가 생겨나듯이, 물질이 더 강화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점에서 역시 퍼포먼스가 가진 휘발성과 상업 디자인에서의 퍼포먼스 간에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DJ 답변 감사합니다. 퍼포먼스 작가에게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비평 의식은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랬을 때 산업 디자이너라는 배경은 퍼포먼스 영역 안에서 자가 발전한 다원 예술의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퍼포먼스의 자기 만족적인 미학주의를 일상적 퍼포먼스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