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볼롯 마케노프

유니스트에서 코펜하겐의 요하네스 토르페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Interviewed by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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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볼롯 마케노프(Aibolot Makenov)는 2019년 유니스트 디자인학과 학부과정을 졸업했다. 아이볼롯은 2020년 8월 부터 덴마크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하는 요하네스 토르페 스튜디오(Johannes Torpe Studios)에서 주니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요하네스 토르페 스튜디오는 디자인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작업물을 내놓고 있는데, 대표적인 고객사로는 뱅앤올룹슨, LG, 모로소, 헤이, 나이키, 페라리 등이 있다.

이승훈 (SH) 유니스트 캠퍼스에서 얼굴을 본지 시간이 꽤 된 것 같다. 먼저 요하네스 토르페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된 것을 축하한다. 스튜디오의 웹사이트를 둘러보았는데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많아보였다. 스튜디오에서 하는 일은 어떤가?

아이볼롯 마케노프 (AM) 여기 코펜하겐에서 일을 하고 생활하는 것은 정말 만족스럽고 유익하다. 요하네스 토르페 스튜디오는 넓은 분야에서 디자인 실무를 하는 곳이다. 우리는 인테리어부터 건축, 가구는 물론 가전제품과 디지털 서비스, 전자제품 프로젝트까지 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탐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과 라이프스타일과 잘 들어맞는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

Johannes Torpe Studios. Credits: Peter Larsen

SH 참여했던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AM 최근 새로운 인테리어 및 건축 프로젝트의 킥오프 미팅을 진행했다. 이런 종류의 가구 관련 디자인 은 유럽에서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작업 방식과 디자이너들의 태도가 산업 디자인 프로젝트와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는 디자인 과정을 재밌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굉장히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한다. 즉, 마음이 내킬 때만 디자인을 한다. 여느 제품 디자인 프로젝트와 비교해서 기간도 굉장히 길고 느리게 흘러간다.

가구 디자인과 반대로 전자제품 프로젝트는 모든 것이 정반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자제품 회사를 클라이언트로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6개월 안에 제품 라인업을 통째로 디자인해야했다. 그래도 보통의 프로젝트들은 한 두 달인 것에 비해 좀 긴 편이었다. 한 두 달만에 하는 프로젝트들은 진행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서 뒤돌아 볼 시간이 없다. 어쨌든 이 프로젝트에서 나는 새로운 기술과 제조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와 제약들을 배울 수 있었다. 또, 디자인을 넘어 사업 전략을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제품을 첫 번째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미리 고려를 하는 것 말이다.

Drop Light
Beoplay S1
Drop Light
Beoplay S1

SH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디자인 스튜디오의 큰 특징인 것 같다.

아이볼롯 맞다. 디자인 스튜디오는  대기업과 많은 것이 다른 것 같다. 그래서 디지이너의 역할도 다르다. 보통 스튜디오는 작은 팀이기 때문에 시간과 자원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스튜디오는 디자인 작업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의 사업 전략도 디자이너의 몫이다. 주어지는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언급한 것과 같이 일반적으로 한 두 달 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다르게 말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여러 프로젝트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나에게는 이것이 디자인 스튜디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만약 대기업에서 일을 했다면 6개월에서 몇 년 동안 면도기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SH 일을 하는 문화는 어떠한가?

AM 우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수평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기 때문에 자유와 책임이 함께 따라온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적응하고 나니 일하기에 더 편한 방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SH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것이 유니스트에서 수업이나 랩에서 하는 디자인 프로젝트와 비슷한데 몇 배 더 집약적인 것 같다.

AM 비슷하다. 그치만 훨씬 더 압축된 느낌이다. 예를 들면 이전에 LG전자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다섯 명의 디자이너가 풀타임으로 두 달이 안되는 기간 동안 작업을 했었다.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20개 정도의 콘셉트를 제작했다. 학교보다 훨씬 더 집중적이고,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와는 별개로 LG전자와 함께한 프로젝트는 기억에 참 많이 남는다. 학교에 있을 때는 ‘나도 언젠가 LG전자와 같은 대기업과 일하는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드디어 LG전자와 함께 일하는 날이군’이라고 생각을 하는 날이 왔었기 때문이다.

Snap AR Goggles designed by SWIFT

SH 정말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이제 일 이야기에서 벗어나보자. 덴마크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나?

AM 우리는 자주 책상에서 벗어난다. 매주 금요일 우리는 프라이데이 바(Friday Bar)라는 시간을 갖는데 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또, 몇 주 전에는 코펜하겐 근교의 집을 빌려 사흘 동안 스튜디오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처음 코펜하겐 도착했을 때 유니스트에서 알던 친구들과 독일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세상이 그리 크진 않은것 같다. 좋지 않는 기억도 있는데, 아주 가끔 야근을 한다. 덴마크에서 거의 있지 않는 일인데 아마도 아직 내게 아시아의 업무 방식이 남아있지 않나 싶다.

SH 시간을 되돌려 유니스트에 있을 때로 돌아가보자. 무엇이 유럽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나?

AM 많은 고민을 하다가 디자인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등학교 때 건축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문화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키르기스스탄을 떠나 한국으로 오게 된 것도 있다. 어쨌든,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들이 소개해주는 바우하우스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럽에서 일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Aibolot Makenov

SH 어떻게 준비를 했나?

AM 유럽에서 일을 갖기 위해 먼저 인턴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턴을 해보는 것은 내 가설이 말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유럽에서 직업을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유럽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말이다. 나는 이 가설을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수업이 끝난 후 저녁이면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유럽의 스튜디오들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연락을 하곤 했다. 아마 50개가 조금 넘는 스튜디오에 연락을 했던 것 같다. 몇 군데는 인턴을 구하고 있었고, 몇 군데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것과는 상관 없이 내 포트폴리오와 함께 이메일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세 곳의 스튜디오에서 답장이 왔다. 세 곳 모두 독일의 디자인 스튜디오였다. 아마 그 때가 2018년 2월쯤이었던 것 같다. 세 곳의 스튜디오 중 윌드 디자인(Wild Design)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의료기기 디자인 프로젝트를 주로 하고 있었는데, 내게는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이었다. 윌드 디자인에서 2018년 7월부터 12월까지 인턴 생활을 했다.

SH 독일에서 인턴을 마친 뒤 다시 유니스트로 돌아왔을 때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이었나?

AM 수업을 들으면서 디자인 스킬과 포트폴리오를 계속해서 발전시켰다. 운이 좋게도 3D CAD 수업의 결과물인 토구즈 코르굴(Toguz Korgool, 중앙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전통 보드게임)로 레드닷 어워드(Red Dot Award)에 출품할 기회가 있었다. IID랩에서 인턴으로 있으면서 김관명 교수님의 전폭적인 도움과 지도를 받을 수 있었고, 우리는 2018년 레드닷 어워드에서 수상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로 날아가 세레모니 행사에 참여했는데, 정말 재미 있었다. 토구즈 코르굴을 상업화하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과 자원에 제약이 있었다.

Reddot Award 2018 winner, Toguz Korgool. Credits: Lee Haebin, Aibolot Makenov, Prof. Kim KwanMyung
Reddot Award 2018 winner, Toguz Korgool. Credits: Lee Haebin, Aibolot Makenov, Prof. Kim KwanMyung
Reddot Award 2018 winner, Toguz Korgool. Credits: Lee Haebin, Aibolot Makenov, Prof. Kim KwanMyung
Reddot Award 2018 winner, Toguz Korgool. Credits: Lee Haebin, Aibolot Makenov, Prof. Kim KwanMyung

다시 돌아와서 이 때는 덴마크에서 일을 하는 것을 꿈꿨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빠져있었는데 특히 폴 헤닝센(Poul Hennisen), 아르네 야콥슨(Arne Jacobsen), 한스 웨그너(Hans J. Wegner)와 같은 덴마크 디자이너들이 나를 덴마크 디자인으로 이끌었다. 당연히 덴마크의 질 높은 삶도 한 몫 했다. 그래서 덴마크의 디자인 스튜디오들을 찾아보고, 포트폴리오와 함께 연락을 했다. 운좋게 스위프트 크리에이티브스(Swift Creatives)에서 답이 왔는데, 거기서 일하면서 똑똑한 동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많은 동료들이 디자인잇(Designit) 출신이었는데, 그들은 내가 모르던 덴마크의 디자인 스튜디오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해서 지금은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하는 요하네스트 토르페 스튜디오(Johannes Torpe studios)로 옮겨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일한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

SH 새로운 환경에서 일과 생활을 하면서 사회적, 문화적으로 어려움은 없었나?

AM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아마도 내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유니스트에서부터 나는 항상 열려있고, 말을 걸기 쉬운 사람이었다. 나의 이런 태도 덕분에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일을 하면서 디자이너로서 가져야할 태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나의 의견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줄도 알아야 한다. 또, 남이 일을 줄 때까지 기다리지말고 먼저 일을 시작하는 주체적인 태도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디자이너라면 모두가 명심해야할 것들이라 생각한다.

SH 해외에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유니스트의 동료들에게 팁을 줄 수 있을까?

AM 디자이너로서의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싶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곧 서로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항상 열려있는 자세이어야 한다. 또, 항상 주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주목하고 있어야 한다.

SH 경험과 생각을 공유해줘서 정말 고맙다. 독자들에게 정말 흥미롭게 내용과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고 생각한다.

AM 나도 고맙다. 즐거운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