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이

유니스트에서 B2B 플랫폼의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기까지

Interviewed by 한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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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가이(Gaee Kim)는 2019년 유니스트 디자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이후 여러 기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 UX 리서처로서의 경력을 쌓았고, 이제는 B2B 플랫폼의 프로덕트 매니저(PM)로 일하며 디자이너를 넘어 기획자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최근 졸업전시의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이제 학부를 막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있는 종현이 맡았다.

종현(JH)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지난번에 학과에 오셔서 재학생들을 위한 세미나를 해 주셨는데, 이렇게 인터뷰도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이(GE) 네, 안녕하세요. 저는 티맥스 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에서 비즈니스 어플리케이션 플랫폼 프로덕트 매니저를 맡고 있는 김가이라고 합니다.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나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같은 기업 업무를 위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JH B2B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조금 어렵게 들리는데요. 설명을 조금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GE 아무래도 많이 낯선 분야이기는 하죠. ERP는 Enterprise Resource Planning의 약자예요. 그러니까, 기업에서 뭔가를 관리하기 위한 툴인거죠. 우리가 흔히 소통을 위해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를 쓰고,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가계부를 사용하듯이, 기업에서도 인사, 재무 등 각 목적에 맞는 다양한 툴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서로 연계 될 수 있는 형태로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ERP의 예시는 학교 포탈 시스템이나 정부24 같은 것들이 있어요.

JH 보통 B2C 시장이 익숙하다 보니 B2B 쪽에 첫 발을 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혹시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GE 사실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직전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이미지 값에서 텍스트 값을 추출해내는 기술) 기술에 AI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에서 서비스 기획부터 UX 기획, GUI 디자인 등의 업무를 맡았었는데, 데이터 기반 기술에 대한 정부 조직이나 기업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경쟁하는 모습이 B2C 시장과는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AI OCR을 활용해 사진 안에서 텍스트를 추출하는 모습

무엇보다 B2B 시장의 특성 상 타겟층을 특정하는 과정이 명확한 만큼, 그들의 니즈를 첨예하게 담아내기 위한 과정들에서 오는 보람이 크게 다가왔어요. 또, 단순히 시각적 인터페이스 뿐만 아니라, 서비스 기획 면에서 시스템 전반의 연계성과 조직 내/외의 이해관계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기술에 대한 지식 격차를 감소시키면서 UX를 기획하는 과정이 흥미로워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JH 제가 이력을 잠깐 봤는데 직전 직장 이전에도 다른 두 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시더라구요.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맡았던 프로젝트 중에 가장 크게 의미 있었던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GE 아무래도 첫 직장에서 IoT 가정용 식물재배기의 사용자 세그먼트를 정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게 가장 큰 의미가 있어요. 석사 졸업 연구의 연장선으로 진행됐던 프로젝트인데요. 100여 명의 잠재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을 진행하면서, 가정용 식물재배기 구매 및 사용의 이유가 크게 두가지, ‘단순히 키우거나 길러서 먹거나’로 나눠진다는 걸 발견하고, 그에 따른 제품 컨셉 차별화 방안을 도출하는 데까지 이어졌어요.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IoT 가정용 식물재배기

사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전 종류였기 때문에 쓰임의 목적이나 용도를 새로 정의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UX 연구 차원에서 되게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JH 데이터 기반 기술 분야에서 일을 하시면서 팀원들, 특히 개발자들과 소통할 때 시각의 차이가 있다 보니 의견이 갈리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럴 땐 어떻게 조율하려고 하시는 편인가요?

GE 사실 팀이나 부서들마다 목적이나 필요한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마찰은 흔히 발생해요. 그 해결점은 공감에 있는 것 같아요. 자주 부딪히는 부분들에 대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얘기해주는거죠. 이럴 땐 학교에서 배웠던 코딩에 대한 지식이 도움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을 공부해야할 지 모르는 경우에는 그들에게 물어보기도 해요. 다들 사명감을 갖고 일하기 때문에 참고할만한 링크나 키워드, 혹은 자기들의 위키를 공유해주는 경우도 있어요.

JH 그렇군요. 혹시 소통할 때 자주 사용되는 도구들이 있을까요?

GE 요즘은 비대면으로 서류를 주고 받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보니, 서면으로 진행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전달력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럴 때 아이디어를 구조화해서 보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이나 저니 맵(Journey map), 블루프린트 등의 학교를 다니면서 배웠던 다양한 도구들을 정말 잘 쓰고 있는 것 같아요.

JH 다른 부서나 파트와 소통할 때 시각화 자료들이 정말 중요하게 쓰이겠네요. 소통할 때 어려움을 느꼈던 부분은 없으셨나요?

GE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전문적인 단어들 대신 그들에게 익숙할만한 단어로 바꿔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때로는 용어들에 대해 같이 정의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도움이 돼요. 얼마 전에는 ‘세일즈’와 ‘마케팅’의 차이에 대한 토의를 하다가 두 시간이나 써버렸어요.

JH 정말 흥미롭네요.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혹시 기억에 남는 특별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GE 유니스트 생활 마지막 1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아까 말했던 IoT 식물재배기의 시작이었던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학업을 마무리했던 1년이에요. 그때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크게 연구랑 제품 제작으로 나눠졌어요.

연구에 대해 얘기를 먼저 해보면, 자율 주행처럼 식물이 스스로 자라는 시스템을 상상해보았어요. 그리고, 자율주행 단계처럼 식물이 스스로 자라는 정도에 따라 단계를 나누었을 때 사람들이 선호도와 애착이 단계별로 어떻게 다를지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제품은 수경 재배 도자기 키트 디자인이었는데, 펀딩을 통해 40세트를 수제로 만들어서 전시에 나가기도 하고, 패키지 디자인에 브랜딩까지 해서 어워드에 내보기도 했어요. 정말 정신 없이 바쁘고 힘들었지만, 되게 뜻깊은 경험이었어요.

프로젝트 “Linnea Pot” 제품 디자인 및 브랜딩 | 김가이 홈페이지

학교 스타트업 센터의 지원을 받아서 스타트업 아이템화를 하고, 펀딩을 받아서 제품 제작을 하고, 디자인 페스티벌에 나가보기도 하고, 이전에 나가본 적도 없었던 어워드에 학회까지 나가게 되면서 그야말로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건 풀코스로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첫 직장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JH 정말 꽉 찬 한 해 였을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디자인을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GE 유니스트에서는 초기 리서치부터 시작해서 최종 디자인까지의 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는데, 이건 사실 기획자가 하는 일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하지만 기획자는 신입을 잘 뽑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한테 맞는 분야를 찾아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UX 리서치, 프로덕트 디자인 등 우리가 갈 수 있는 직군들이 세부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미리 알아보고 자신만의 강점을 키울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또,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을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영역을 커버하면서 아기 기획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나에게 맞는 분야를 찾아가는 데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어려운 점을 공유하길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유니스트 특성 상 다른 학교보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가 조금 더 돈독하잖아요. 교수님들이랑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 얘기해봐도 좋고, 정 불편하면 선배들한테 연락하면 다들 진지하게 들어줄 거예요.

JH 정말 좋은 조언이네요. 오늘 이렇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GE 네, 다음에 또 뵐게요!